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강의 변 (문단 편집) == 나머지 황족과 궁녀들의 운명 == 정강의 변 당시 금나라로 끌려간 송 휘종의 자식들 [[https://m.blog.naver.com/d916d021/220551141424]] 송 휘종에게는 딸, [[공주]]들이 21명 있었다. 있었는데 한명 한명 후술된 행적들을 직접 읽어보면 알겠지만 전원이 금나라 황족, 귀족들의 첩이 되거나 심지어 '''내기 상품'''으로 걸리기도 하고 금나라에서 운용하던 '''[[위안부|위안소]]'''인 세의원(洗衣院, 금나라 [[기생|관기의 기방]])에 들어가 관기 노릇을 하게 되며, 심하게는 살해되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비참함의 극치이며 [[황녀]]들이 이럴 정도니 다른 후궁이나 [[궁녀]]들의 운명은 일일이 따져볼 것조차 없을 것이다. 아래 명단에서 '제희(帝姬)'는 휘종이 '공주'를 대신하여 만든 작위이다. * 장녀 가덕제희(嘉德帝姬) 조옥반(趙玉盤, 1100~1140): 정강의 변 당시 나이 28세, 좌위장군 증인(曾夤)에게 출가하여 1녀를 두고 있었다. 1127년 금나라의 포로가 되어 금나라 송왕 완안종반의 첩이 되었으며 완안종반이 반역죄로 주살된 후에는 금나라 희종의 첩이 되었다. 딸은 훗날 완안올실의 3남의 첩이 되었다. * 차녀 영덕제희(榮德帝姬) 조금노(趙金奴, 1103~?): 정강의 변 당시 나이 25세. 좌위장군 조성(曹晟)에게 출가하였으며 1127년 금나라의 포로가 되어 완안창의 첩이 되었다. 완안창이 주살된 후에는 금나라 희종의 첩이 되었다 . * 3녀 안덕제희(安德帝姬) 조금라(趙金羅, 1106~1127): 정강의 변 당시 나이 22세. 좌위장군 송방광(宋邦光)에게 출가하여 1녀를 두고 있었다. 1127년 금나라의 포로가 된후 금나라 도통 완안도모의 첩이 되었으나 얼마후 살해되었다. 딸은 포로가 되지 않았고 훗날 남송의 수왕 조백규에게 출가했다. * 4녀 무덕제희(茂德帝姬) 조복금(趙福金, 1106~1128): 정강의 변 당시 나이 22세. 선화전시제 채조(蔡絛)에게 출가하였으며 금나라의 포로가 된 후 금나라 2황자 완안종망의 첩이 되었다. 완안종망이 죽은 후에는 완안희윤의 첩이 되었다. * 5녀 성덕제희(成德帝姬) 조호아(趙瑚兒, 1110~?): 정강의 변 당시 나이 18세. 향자방(向子房)에게 출가하였었다. 금나라의 포로가 된 후 세의원에 들어가 기생이 되었다. * 6녀 순덕제희(洵德帝姬) 조부금(趙富金, 1110~?): 정강의 변 당시 나이 18세. 전비(田丕)에게 출가하였었다. 금나라의 포로가 된후 진주대왕 완안설야마의 첩이 되었다. * 7녀 현덕제희(顯德帝姬) 조교운(趙巧雲, 1111~?): 정강의 변 당시 나이 17세. 유문언(劉文彦)에게 출가하였었다. 금나라의 포로가 된 후 세의원에 들어가 기생이 되었다. 전 남편 유문언 역시 포로가 되어 끌려갔는데 1132년 송나라 황자 조구와 함께 휘종이 반역을 꾀한다고 고변했다가 무고임이 드러나 도리어 처형당했다. * 8녀 순덕제희(順德帝姬) 조영락(趙纓絡, 1111~?): 정강의 변 당시 나이 17세. 향자의(向子扆)에게 출가하였었다. 금나라의 포로가 된 후 완안종한의 첩이 되었다. 훗날 완안종한에게서 풀려났으나 다시 금동로도통 습고국왕의 첩이 되었다. * 9녀 의복제희(儀福帝姬) 조원주(趙圓珠, 1111~?): 정강의 변 당시 나이 17세. 세의원에 들어가 기생이 되었다. 훗날 완안종필(금울출)의 첩이 되었다. * 10녀 유복제희(柔福帝姬) 조현현(趙嬛嬛, 1112~1141): 정강의 변 당시 나이 16세. 완안종망(完顔宗望)의 첩이 되었다가 그가 주살된 후 세의원에 들어가 기생이 되었고 이후 개천대왕 완안종현(蓋天大王 完顔宗賢)과 부하장수 서환의 내기 상품이 되었는데 내기에서 이긴 서환(徐還)에게 내려져 그의 부인이 되었다. 사망 후 유해는 남송으로 돌아와 화국장공주(和國長公主)란 시호를 받고 장사지내졌다. * 11녀 보복제희(保福帝姬) 조선랑(趙仙郞, 1112~1127): 정강의 변 당시 나이 16세. 금나라로 끌려가던 중 사망. * 12녀 인복제희(仁福帝姬) 조향운(趙香雲, 1112~1127): 정강의 변 당시 나이 16세. 금나라로 끌려가던 중 사망. * 13녀 혜복제희(惠福帝姬) 조주주(趙珠珠, 1112~?): 정강의 변 당시 나이 16세. 금나라의 포로가 된 후보산대왕 완안사보의 첩이 되었다. * 14녀 영복제희(永福帝姬) 조불보(趙佛保, 1112~?): 정강의 변 당시 나이 16세. 세의원에 들어가 기생이 되었다. * 15녀 현복제희(賢福帝姬) 조금아(趙金兒, 1112~1127): 정강의 변 당시 나이 16세. 금나라로 끌려가던 중 사망. * 16녀 영복제희(寧福帝姬) 조관주(趙串珠, 1114~?): 정강의 변 당시 나이 14세. 금나라의 포로가 된 후 연왕 완안종준의 첩이 되었다. 완안종준이 주살된 후 입궁하여 금나라 희종(熙宗)의 첩이 되었다. * 17녀 화복제희(和福帝姬) 조금주(趙金珠, 1116~?): 정강의 변 당시 나이 12세. 금나라의 포로가 된 후 세의원에 들어가 기생이 되었다. * 18녀 영복제희(令福帝姬) 조금인(趙金印, 1118~?): 정강의 변 당시 나이 10세. 포로가 된 후 세의원에 들어가 기생이 되었다. 훗날 입궁하여 금나라 희종(熙宗)의 첩이 되었다. * 19녀 화복제희(華福帝姬) 조새월(趙賽月, 1119~?): 정강의 변 당시 나이 9세. 금나라의 포로가 된 후 세의원에 들어가 기생이 되었다. 훗날 입궁하여 금나라 희종의 첩이 되었으며 훗날 비(妃)에 봉해졌다. * 20녀 경복제희(慶福帝姬) 조금고(趙金姑, 1121~?): 정강의 변 당시 나이 7세. 금나라의 포로가 된 후 세의원에 들어가 기생이 되었다. 훗날 입궁하여 금나라 희종의 첩이 되었다. * 21녀 순복제희(純福帝姬) 조금령(趙金鈴, 1124~?): 정강의 변 당시 나이 5세. 금나라의 포로가 된 후 세의원에 들어가 기생이 되었다. 훗날 완안설야마의 첩이 되었으며. 이후 통역관이던 왕성체(王成棣)에게 하사되어 그의 부인이 되었다. 이렇게 휘종은 자신의 부인들과 딸들과 궁녀들이 오랑캐들의 노리개가 되었지만 아주 태연했는데, 그가 어느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슬퍼할 때가 있었다. 그 소식은 바로 '''자신이 모은 서화 컬렉션이 금나라 병사들에 의해 훼손되고 약탈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심지어 금 태종은 송나라 휘종의 딸들을 후궁으로 취하고, '''너의 딸이 내 아이를 낳았으니 너에게도 옷 두 벌을 보내주마''' 라는 서신과 함께 송 휘종에게 옷 두 벌을 보냈는데 말이 좋아서 선물이지 실제로는 휘종을 제대로 모욕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송 휘종은 '''저같이 쓸모없는 놈과는 달리 제 딸들이 폐하에게 도움이 되니 정말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아이들을 많이 생산하시길 기원합니다.'''로 답했다. 어찌보면 비굴하게 보이겠지만, 살아 남으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흠종]]의 부인인 [[인회황후]]는 27세였고 금나라 황궁으로 끌려와 금황제에 수청을 들라는 명을 받았으나[* 정확히는 "목욕"을 하라는 명을 받았다는데, 이게 뭘 의미하는지는..], 더이상의 굴욕을 거부하고 자결을 택했다. [[금태종]]은 이를 듣고 정실부인이라는 시호를 추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